대한심장혈관영상의학회

메뉴열기
Home 지난뉴스레터보기 발행인:이배영  편집인:추기석, 강은주, 김진영          News Letter Vol.46
메뉴닫기

ATRIUM

미국 연수 후기-삼성서울병원 김성목교수님

안녕하세요.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성목입니다. 귀국 후 자가격리 중 연수후기를 요청 받았습니다. 벌써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지난 1년의 기억들을 떠올려봅니다.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시작한 미국 생활


저는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의 UCSD 병원을 연수장소로 선택하였는데 세브란스병원 이혜정 선생님께서 2년전에 다녀오셨던 곳으로 영상의학과 교수인 Dr. Albert Hsiao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는 UCSD 영상의학과에서 흉부 및 심장영상을 담당하고 있고, AiDA라는 영상분석 lab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Arterys라는 영상분석 회사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합니다. Dr. Albert는 연구활동 초반에는 4D flow관련 논문을 출간했고, 최근 몇 년간은 A.I. 연구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습니다. RSNA를 비롯한 유수의 학회에서 4D flow 및 A.I. 연구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40대의 나이이지만 벌써 관련 session의 좌장도 많이 경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A.I. 연구를 어떤 식으로 수행해 나가는지 관찰해보고 싶었고, 임상적으로는 4D flow 케이스를 경험하고 싶은 목적을 가지고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UCSD 병원은 주요 캠퍼스가 La Jolla와 Hillcrest에 있는데 저는 La Jolla에 있는 Jacobs Medical Center 건물 옆 ACTRI (Altman Clinical and Translational Research Institute) 건물에서 지냈습니다. ACTRI는 UCSD 병원 교수들의 office와 연구원들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연구원들의 자리는 cubicle의 형태로 있었습니다.


연수 첫 주에 P.I.인 Dr. Albert Hsiao는 A.I. 관련 연구주제를 주며 마감기한을 정해놓고 목표분석 건수를 알려주었습니다. 여유 있게 연수를 시작하고 싶었던 저는 조금 당황했지만 한국 의사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주고 싶었기에 열심히 영상 분석을 시작했습니다. 접속 프로그램의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기 때문에 기한에 맞춰 완료하기 위해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도 노트북으로 영상분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Lab에는 저처럼 연수 온 사람은 없었고, 대부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대학원생들로 영상 획득 및 분석과 관련된 A.I. 연구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어장벽도 있었지만 관심사가 저와 사뭇 달라서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는 데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이왕 온 거 외국 병원의 문화를 경험해 보자 싶어 lab meeting외에도 일주일에 2-3개의 임상 컨퍼런스를 참석하였습니다. 하지만 초반에 충만했던 이런 의욕은 높디높은 언어장벽에 부딪히며 일찍 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UCSD 병원 캠퍼스를 혼자 거닐곤 했는데 찬란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수를 잘 보내고 있는 것인가’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9월 NASCI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하려고 했었는지 Dr. Albert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존중하는 말을 해주며 제가 자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2-3일만 판독하고 나머지 날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의 근무 환경이 놀라웠고, 일주일에 한번이긴 했지만 평일에도 연구원들과 차를 타고 유명 커피체인점을 찾아가서 1-2시간씩 티타임을 가지는 여유로움도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lab 생활은 공대연구실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저와는 약간의 괴리감이 들었고 시간이 갈수록 A.I. 연구에 대한 흥미는 반감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했는지 Dr. Albert는 lab에서 자유주제로 발표를 한번 하라고 했고 저는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환자 영상을 분석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게 연수강좌 수준의 강의를 한번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Dr. Albert는 강의가 교육적이었다며 영상의학과 전공의들을 대상으로도 강의를 한번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케쥴을 잡은 것이 지난 1월이었는데 연구원들이 아닌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좀더 편안히 강의를 하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 후에는 잠시였지만 병원 생활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걱정과 달리 이 순간만큼은 영어 못하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UCSD 병원에 온 이유로 처음으로 즐거움을 느꼈던 거 같고, A.I. 연구보다는 임상 쪽 일이 재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강의 후에 저는 남은 연수 기간을 판독실과 MRI실에서 전공의들이나 다른 영상의학과 교수들과 교류하며 임상케이스를 보면서 지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Dr. Albert에게 부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그 후…


1월초부터 중국과 한국의 코로나 상황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Lab에 심한 기침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마스크를 써야 되나 생각을 하다가도 너무도 당연하게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니 혼자서 쓸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2월에 한국의 상황이 한창 악화되고 있을 때 (코로나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lab에서도 심한 감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2월말에는 발표자들과 일부 연구원들이 다 심한 감기가 걸려서 lab meeting이 취소가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출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던 무렵, 3월 둘째 주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Stay at home’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후의 미국 상황은 한국에서도 언론을 통해 접하셨겠지만, 걷잡을 수 없이 환자수가 증가하였고, 마트에서는 사재기가 일어나고, 인종차별이 이슈가 되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코로나 검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검사를 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1-2주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초기 대응 시 마스크 착용보다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만을 강조하던 백악관의 브리핑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가끔 해외토픽처럼 보도되는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나 행동은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어찌됐든 이 일로 미국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판독실 참관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고,온라인 lab meeting만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로 연수 후반부에 계획했던 가족 여행 계획들도 취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도 있었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치면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고,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백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고, 혹시나 아파서 미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걱정을 안고 지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족들과 좁디좁은 집에서 24시간 아옹다옹 부대끼며 지내야만 하는 상황을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자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비상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한동안 미국 뉴스를 열심히 시청 하였는데 한국의 대응 체계가 우수 사례로 보도되며 미국의 대응과 비교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의 여러 시스템들을 부러워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코로나 방역 강국의 면모를 보여준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과 역량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마냥 남이 잘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쫓아가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더 깊게 연구하고 다져 나가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무언가를 이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자가격리를 끝내고 병원 업무에 복귀해야 합니다. 늘 일에 쫓겼고 때때로 숨막히게 느껴졌던 생활이라 벌써 약간의 긴장감이 생깁니다. 연수 생활의 추억들이 앞으로 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제가 겪게 되는 경험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